<좋아하는 작가의 책> 요즘엔 하드 SF 소설을 즐겨 봅니다. 그 중에서도 테드 창의 소설은 최고죠.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것 같은 공상과학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강력히 추천합니다. 공상과학 소설으로도 흥미롭지만 철학적인 면도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훌륭한 소설 모음집입니다.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다.] 테드 창의 여러 단편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는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옴팔로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숨'이다. '숨'은 2008년 발표한 단편으로 폐쇄된 영역에 사는 기계인간들이 자신들이 인지하고 기억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기록으로 남긴 이야기를 먼 훗날의 탐험가가 발견하는 것이다. 이 기계인간들은 기억이 디스크에 쓰여지는 것인지 알고 있었는데, 한 기계인간이 기억은 기록되거나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형태로 순환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러나 닫힌 계였던 그들의 세상에서 바람이 점점 멈춰가기 시작한다. 열죽음이 닥친 것이다. 숨이란 제목이 인상적이다. 영어의 스피릿의 어원이 숨쉬는 것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시간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현재의 과학자들은 우리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과거를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시간은 흐르지 않으며, 우리가 인지하지 않은 순서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술사의 문을 통과한 상인은 마침내 운명을 받아들이는데, 이 과정에서 술탄에게 전하는 용서와 뉘우침의 지혜가 감동적이다. '옴팔로스'는 창조론이 현실이 된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는 배꼽이 없는 인간과 나무테가 없는 나무를 찾고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매우 짧은 역사를 갖고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태양이 세상을 중심으로 돈다. 그런 사람들이 우주를 관측하다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을 발견한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지옥은 신의 부재'처럼 신학과 과학이 어떤 관계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언어와 기억, 타자에 대한 내용으로 볼 때마다 배우는 것이 많다. 두 개의 이야기가 두 개의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현재의 다양한 SNS 사용과 사람이 인식하는 진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당신의 모든 순간(The Entire History of You)과 비슷하지만, 기술에 대한 불신과 나약한 인간으로 이야기를 몰아가는 블랙미러보다는 훨씬 깊은 사색을 보여준다. SNS에 대해서 여러 가지 측면의 우려와 걱정이 있는데, 단편 소설에서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라이프 로깅에 대해 배타적인 생각을 하던, 작중 화자가 기억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면서 기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반추한다. 기록은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은 너무 쉽고 단순한 일 같지만, 종이를 만드는 일과 그 종이에 흔적을 남기는 필기구는 수백 년간의 기술이 압축된 결과물이다. 이제 기록은 종이와 연필을 넘어서 디지털로 많이 이루어지며, 문자를 넘어서 사진, 사진을 넘어서 영상으로 저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