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트 메시지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건

가리켜 '무탄트' 라고 부른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이다. 즉, 기본 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를 말한다. 원주민들은... 자연 치료법을 전공한 백인 여의사 말로 모건은 이 참사람 부족이 엄선한 무탄트 메신저로 선택되어, 이들과 함께 넉 달에 걸친 사막 도보 횡단여행에...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이)가 주로 이 책을 읽었어요.

이 책에 남긴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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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 영적이고 종교적 내용을 다루고 있거나 고대인 혹은 자연인의 삶에 대한 내용이면 읽기 전부터 약간의 마음의 벽을 친다. 그들의 삶만이 온전하고 충만하며 행복한 것은 아니며 절대 진리도 아니라는 것. 이번에도 그랬다. 작가의 과도한 편향이 들어간 뻔한 내용이지 않을까? ‘원시로 돌아가자!!’ 같은 되도 않는 슬로건을 내뿜지 않을까? 책을 읽는 도중에 중간중간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 황당한 얘기가 진짜일까? 하는 얄팍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실제로 출판 시 여러가지 소동이 좀 있었던 듯 하다. 저자의 말이 픽션이라는 증거가 꽤 있었다. 그녀가 묘사하는 식생과 원주민의 특징이 실제 호주의 식생과 원주민의 특성보다는 아메리카 원주민에 가깝다는 이야기나 그녀의 미심쩍은 호주 체류 기간과 그녀가 방문한 도시의 전화 비용 등등을 조목조목 들어 반박한다. 반면에 이 책 내용이 진실이라는 증거는 저자의 증언뿐이었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쳤지만, 내가 이상하게 느낀점은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현대인의 나쁜 점 모두를 참사랑 부족은 정확하게 반대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저자가 현대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몇가지 가르침을 목차로 두고 설계한 듯한 인위를 느꼈달까.. 특히나 원주민이 터득한 의학체계가 현대 의술과 견주어 충분하다는 이야기는 갸우뚱하게 됐다. 독초나 약초를 다양하게 먹어서 증명되는 것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배제하는 방법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들이 가진 신비의 약초의 효능은 당연히 좋겠지만, 그 안에서 도태된 원주민은? 저자가 자연치유 의학 뭐 이런거 전문가라 더 의심이 됐다😅 물론 이런 나의 생각이 효능주의니 뭐니 그런거긴 하다. 그래도 절벽에 굴러떨어져 뼈가 튀어나온 원주민의 다리의 살과 뼈에게 말을 걸어 제자리를 찾는다니. 뭐 하여튼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내용 자체는 상당히 흥미롭고 유익하다. 우리가 우리의 탐욕을 자제하지 못하고 파괴하는 모든 것들. 소스로 뒤엎고 설탕을 뿌려대는 본질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참다운 인간이란건 뭘까? 진정으로 행복한 것은 뭘까? 그걸 규정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맞는 길을 가는걸까? 같은 질문에 대한 원주민이나 반문명인의 답변을 알 수 있었다. 차이를 발견하고 조화로운 방법을 만드는 것, 그 방법 속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감사하기 등등..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지속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 그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는 책이다. 얼마전에 읽었던 ‘원형회귀의 신화’라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고대인의 인식 체계를 참사람 부족은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원시인도 시간에 순환적인 방향을 부여함으로써 시간의 비가역성을 무효화시키려 한다. 모든 것은 매 순간 그 처음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과거는 미래의 예시일 뿐이다. 그 어떤 사건도 비가역적인 것은 아니며 그 어떤 변화도 최종적이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에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동일한 원초적 원형들의 반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원형의 반복은 원형적인 행위가 계시되었던 신화적인 순간을 재현함으로써 세계를 그 최초의 동일한 여명의 순간 속에 끊임없이 머물게 해준다. 시간은 사물들의 나타남과 실존을 가능케 해줄 뿐이다. 시간은 사물들의 실존에 아무런 결정적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시간 자체가 끊임없이 갱신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사회의 인간이 경험하는 욕구, 즉 "역사"를 거부하려는, 원형들을 무한히 모방하려는 집요한 욕구는, 세속적인 삶의 하찮음에 매몰되어 "영락"하는 것에 대한 공포의 표현, 실재에 대한 갈증의 표현이다. 원시인들이 실재를 나타내는데 사용하는 표현과 이미지들이 우리에게는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라도,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원시적인 행태가 갖는 깊은 의미이다. 그 행태를 지배하는 것은 비실재들로 이루어진 세속 세계와 대립하는 절대적 실재에 대한 믿음이다. 궁극적으로, 세속 세계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가 아니다. 세속 세계는 대표적인 비실재, 비창조물, 비존재이고, 요컨대 무無이다.” 실재의 인식이라는 것도 우리가 최근에 만든 발명품이긴 하다만.. 난 그래도 원시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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