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세습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화제작실력대로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능력주의가 중산층의 빈곤화와 함께 엘리트를 자기파멸로 이끈다고 비판한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의 『엘리트 세습(원제: THE MERITOCRACY TRAP)』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미국 사회에 능력주의 논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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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불평등이 화두다. 우리는 이전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행복과 불행은 대체로 상대적인 감정이다. 부유층과 중산층의 격차가 중산층과 빈곤층의 격차보다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고, 이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혹은 눈돌리기 위해 정치인은 여러 효능감 떨어지는 포퓰리즘을 남발하고 우리는 서로를 공격한다. 이 와중에 정말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법이 공정이고 능력인가? 이에 대한 답으로 대니얼 마코비츠는 능력주의 그 자체가 함정이라고 역설한다.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가속화한다는 점은 최근 ‘공정이라는 착각’에서도 다룬 듯 하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부모님이 서울대를 나와서 금융계에 일하고 있는 자녀가 수능에 유리할까? 아니면 맞벌이하는 평범한 가정의 자녀가 유리할까? 어릴때부터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오는 불행을 그대로 맞고 자란 자녀가 사회적으로 명망이 생길까? 아니면 어릴때부터 좋은 교육, 좋은 지역, 좋은 선생님에게 케어 받은 자녀가 사회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까? 성공한 기업가나 기업의 임원의 출세 스토리뒤에 감춰진 그들의 출신을 보면 현타 올때가 종종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고위층은 멍청하고 게을렀기때문에 혈족과 토지 기반의 부를 통해 놀고 먹으면서 일거리를 중산층에게 뿌렸다. 그리고 토지 기반의 부, 영지는 전국 곳곳에 있기 때문에 전국에 이산이 가능했고 어느 지역의 중산층이나 고만고만했다. 반면 지금의 엘리트는 엄청난 교육과 실력, 그리고 엄청난 노동 생산력으로 부를 창출한다. 그들은 인력을 관리하고 노동을 혁신하는 기술개발을 통해 중산층의 일거리를 가져온다. 일례로 엘리트가 만든 컴퓨터 어플 하나로 직원의 노무를 전부 감시 할 수도 있다. 그들의 부는 재능과 지능이 기반이기 때문에 모일 때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한다. 엘리트들이 더 좋은 학군, 더 좋은 지역으로 몰려들고, 그들끼리 결혼하며 증여세가 필요없는 강력한 문화자본을 항유함과 동시에 자녀에게 교육으로 세습한다. 기득권이기에 정치참여 발언권도 셀 뿐더러 그에 따른 인프라 확충 또한 같은 지역에서 누린다. 신흥 귀족의 탄생이다. 능력주의 자체가 불공평을 가속한다니. 맞든 틀리든간에 조승연 작가가 이 책을 소개하며 말했듯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기에 읽어봄직하다. 같은 현상을 달리 해석하는 다양성이야말로 문제해결에 대한 실패확률을 줄여주니까. 능력주의가 아니라면 어떻게 계층 사다리를 올라가냐? 라는 반문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내세울건 혈통밖에 없던 귀족의 자리를 실력있는 사람들로 교체하는건 민주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더 나은 대안이라도 있어?라는 것도 떠오르는 의문이다. 경쟁이 통했던 것은 적어도 초창기에는 매우 맞는 말이었다. 마치 어떤 생물군이 대멸종이나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응하여 빠르게 방산하고 기존 생태 지위를 뺏어오는 것처럼 새로운 경쟁 논리의 등장이 중산층의 분화와 성장을 이끌었다. 능력이라는 적응 수단을 얻어 번성하던 귀족의 지위를 손쉽게 빼앗아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뭐든 그렇듯 방산 이후에는 다시 수렴하기 마련이다. 지금도 그 경쟁 논리가 너무도 치열하고, 그 경쟁에서 운으로건, 실력으로건 승리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것 처럼 보이고, 심지어는 그 살아남은 자들또한 그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고생하며 살아간다. 최근 스켑틱에서 인간의 공격성을 다룬 칼럼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와 신기하여 옮겨본다. 여러 종중에서 서로에게 가장 공격적인 집단이 바로 인간이다. 특히 자원이 부족하고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더더욱 그 공격성은 심해진다. 이에 칼럼의 저자는 선점권에 대한 권리와 위계질서, 그리고 과도한 경쟁을 줄이는 이산이야 말로 집단 간 공격성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지리적 이산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더 다양한 차원의 이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마무리 짓는다. 불평등의 원인을 따지는 이 책의 논의는 이쯤하면 설명이 된것 같다. 사실 책의 논지는 단순하지만, 그것을 논증하는 지리한 과정이 계속 반복돼서 읽기 매우 힘들었다. 것보다도 내가 눈에 보이는 불평등이 유발하는 현상에 대해서 몇가지 언급하고 싶다. 엘리트적인 지위는 눈에 보이는 교육이나 자본의 세습도 있지만, 기회에 도달하는 인식 또한 세습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과 책 같은 어떤 수단들은 도처에 널려있지만, 그것을 잘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인식 자체를 얻지 못하는 중산층도 엄청나게 많다. 흔히말해 낚시대를 아무리 가져다줘도 고기를 낚는 도구인지, 어떻게 낚는지, 낚아서 어떻게 요리를 해먹는지에 대한 인식 또한 점점더 양극화된다는 거다. 그리고 저자가 계속해서 불안해 하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낙후되는 중산층이 느끼는 모멸감이다. 충분히 노력하고 치열하게 살아도 ‘이 세계는 이미 공정해, 근데 너는 능력이 부족해서, 기회를 못타서 그렇게 사는거야’라는 논리는 중산층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분노를 일으킨다. 더더욱 이 논리는 엘리트층에서도 더한 경쟁을 유도하여 그들의 정신 세계를 피폐하게 만든다. 경쟁에 도태되었다는 절망감은 책에서도 언급되고, 슈카의 컨텐츠에서도 언급되었던 ‘절망의 죽음’으로 구체화된다. 한국의 높은 자살율도 이와 비슷하게 설명될 수 있다. 한국은 전형적인 이 책이 말하는 경쟁이 치열한 국가다. 다행히도 미국만큼 법안의 로비가 덜하기 때문에 기득권의 논리 자체가 정치에 직접 반영되지는 않아서 가속화는 덜되는 것 같긴하다만. 워낙 자원이 적다보니 경쟁은 지금보다 더 치열해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 우리는 이미 속하지 못한, 떠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자포자기하고, 이제는 서로에게 그 모멸감을 공격성으로 드러내고 있다. 나보다 더 젊은 세대는 명품소비라는 엘리트 껍데기만 흉내낸 소비활동으로 그들을 선망하고 스스로를 자위할 뿐이다. 플렉스 문화도 결국은 그렇게 이해할 수 있겠다. 지지 받는 힙합 스타들, 플렉스의 표본인 염따나 호미들, 창모 같은 래퍼가 선망 받는것도 그 어두운 과거를 물리치고 경쟁해 승리해 승리를 만끽하는 모습이 멋지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아이돌이다. 마지막으로 나만의 해결책. 전세계적인 추세나 흐름은 절대 개인이 바꿀 수 없다. 그 자체로 엄청난 질량으로 무섭게 흘러가고 있으며, 우리는 결국 큰 과오를 다시 범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와중에 우리는 주변 사람 잘 챙기고, 기회 있으면 영리하게 얻어내고, 너무 트렌드에 미쳐서 과소비하지 말고 더더욱 흐름을 이용하려는 시선이 필요하겠다. 좀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느껴지지만 쉽게말해서 기회는 계속 온다. 물론 그 기회를 잡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씨드머니 만들고 금융공부하고 자기 할일 열심히하고 주변 사람 잘 챙기고.. ㅋㅋ 겸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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