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은희경동서문학상ㆍ이상문학상ㆍ한국소설문학상 수상 작가 은희경의 새로운 창작집. 사소한 일상을 해부학적 시선으로 풀어낸 삶의 방정식! 생명에 대한 깊은 사유의 긴장으로 환한 어둠의 삶을 들여다보는 내시경의 미학...이 책 구매하기이 책을 읽은 사람들서비스 기획자(이)가 주로 이 책을 읽었어요.이 책에 남긴 코멘트1개서비스 기획자 1문학 1불안은 보통 경계에서 일어난다. 경계는 당연하게도 무언가와 무언가가 함께 있을때 존재하는데, 물과 기름처럼 그 선이 분명하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처럼 불분명하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경계도 불분명한데 하물며 세상과 나, 의식과 나, 이런 복잡하고 다층적인 경계란 얼마나 불분명할까? 불안은 이 모든 경계마다 잠재되어 있다. 이 수 많은 경계에서 일어나는 파장을 소음이나 진동처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류가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가 그랬고, 나도 그랬다. 은희경 소설의 주인공들도 모두 이런 부류다. 해설에서 우성과 열성에 대해 얘기한것과 섞어보자. 그렇다면, 경계의 안쪽은 우성, 바깥쪽은 열성이다. 자꾸만 바깥쪽으로 탈락하는 열성의 삶은 자의든 타의든 경계에서 항상 탈락하며, 불안해한다. 그리고 동물에 가까운 생존본능으로 어찌보면 순수하게 존재해나간다. 불행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와는 별도로 순전히 생물로만 봤을때 그렇다는 얘기다. 이 우성과 열성, 선택과 배제의 갈림길에서는 다가올 미래와 두고온 과거와 유보된 현실이 존재한다. 나는 끊임없이 유보해보려고 해도 주변의 선택으로 인한 파장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등떠밀기도 한다. 우리는 이 충동과 등떠밈에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견딜순 있는걸까? 그건 사실 생존이 아니라 도태일 것이지만, 그렇다고 열성의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도 떠오른다. '아내의 상자'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나서 이런 이상한 권태(?)를 느꼈다. 그럼에도 재밌었던 부분은 인간실격이나 금각사처럼 열성의 삶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달랐던거.. 밑도 끝도 없는 파멸과 탐미 등과는 대조된다. 어찌보면 그건 동물의 생존본능보단 인간답다. 예전에, 잘 모르는 작간데 심승욱이라는 분의 '안정화된 불안'이라는 행위예술 작품을 누군가를 통해 우연히 본적이 있다. 작품보다도 그냥 '안정화된 불안'이라는 표현이 아주 인상깊었다. 표면이 아주 잔잔하다고 경계가 없는것은 아니다. 그저 불안이 잠든 표면이 안정화된것일 뿐. 불안을 아주 잘 드러낸 표현이다. 작년에 은희경 작가의 소년을 위로해줘를 읽었었는데, 이렇게 다른 작품이라니. 하며 놀랐다. 그러면서도 예민하게 태어놔서 그 괴리를 더 섬세하게 느끼면서 자랄 소년, 소녀를 위로해주는 따뜻한 작품이라 이 대비가 더 재밌게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우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면, 인간의 지평 너머의 무언가가 밝혀질 희망이 아니라면 그렇게 큰 아쉬움은 없다. 도, 철학, 진리 이런건 사실 이미 인간이 달성해본거고, 우주는 그 어떤 인류도 도달해보지 못한 영역이라고 생각. 심지어 가만히 앉아서도 볼 수 있음 ㅋ 개꿀띠서비스 기획자문학소호현서비스 기획자@이마고픽쳐스약 3년도움됐어요
불안은 보통 경계에서 일어난다. 경계는 당연하게도 무언가와 무언가가 함께 있을때 존재하는데, 물과 기름처럼 그 선이 분명하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처럼 불분명하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경계도 불분명한데 하물며 세상과 나, 의식과 나, 이런 복잡하고 다층적인 경계란 얼마나 불분명할까? 불안은 이 모든 경계마다 잠재되어 있다. 이 수 많은 경계에서 일어나는 파장을 소음이나 진동처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류가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가 그랬고, 나도 그랬다. 은희경 소설의 주인공들도 모두 이런 부류다. 해설에서 우성과 열성에 대해 얘기한것과 섞어보자. 그렇다면, 경계의 안쪽은 우성, 바깥쪽은 열성이다. 자꾸만 바깥쪽으로 탈락하는 열성의 삶은 자의든 타의든 경계에서 항상 탈락하며, 불안해한다. 그리고 동물에 가까운 생존본능으로 어찌보면 순수하게 존재해나간다. 불행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와는 별도로 순전히 생물로만 봤을때 그렇다는 얘기다. 이 우성과 열성, 선택과 배제의 갈림길에서는 다가올 미래와 두고온 과거와 유보된 현실이 존재한다. 나는 끊임없이 유보해보려고 해도 주변의 선택으로 인한 파장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등떠밀기도 한다. 우리는 이 충동과 등떠밈에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견딜순 있는걸까? 그건 사실 생존이 아니라 도태일 것이지만, 그렇다고 열성의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도 떠오른다. '아내의 상자'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나서 이런 이상한 권태(?)를 느꼈다. 그럼에도 재밌었던 부분은 인간실격이나 금각사처럼 열성의 삶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달랐던거.. 밑도 끝도 없는 파멸과 탐미 등과는 대조된다. 어찌보면 그건 동물의 생존본능보단 인간답다. 예전에, 잘 모르는 작간데 심승욱이라는 분의 '안정화된 불안'이라는 행위예술 작품을 누군가를 통해 우연히 본적이 있다. 작품보다도 그냥 '안정화된 불안'이라는 표현이 아주 인상깊었다. 표면이 아주 잔잔하다고 경계가 없는것은 아니다. 그저 불안이 잠든 표면이 안정화된것일 뿐. 불안을 아주 잘 드러낸 표현이다. 작년에 은희경 작가의 소년을 위로해줘를 읽었었는데, 이렇게 다른 작품이라니. 하며 놀랐다. 그러면서도 예민하게 태어놔서 그 괴리를 더 섬세하게 느끼면서 자랄 소년, 소녀를 위로해주는 따뜻한 작품이라 이 대비가 더 재밌게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우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면, 인간의 지평 너머의 무언가가 밝혀질 희망이 아니라면 그렇게 큰 아쉬움은 없다. 도, 철학, 진리 이런건 사실 이미 인간이 달성해본거고, 우주는 그 어떤 인류도 도달해보지 못한 영역이라고 생각. 심지어 가만히 앉아서도 볼 수 있음 ㅋ 개꿀띠서비스 기획자문학소호현서비스 기획자@이마고픽쳐스약 3년도움됐어요